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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멋대로 사진 찍기


제목: [사진이야기] 정약용의 그림자 놀이와 사진의 원리
이름: 저녁노을 * http://blog.daum.net/namsanphoto


등록일: 2012-12-21 14:37
조회수: 4212 / 추천수: 282


0158.jpg (150.9 KB)



<목민심서>를 지은 근엄한 사상가로 알려진 다산 정약용은 그림자 놀이와 관련된 두 편의 멋진 글을 남겼다.  
먼저 읽을 글은 〈캄캄한 방에서 그림 보는 이야기[漆室観画説]〉이다.

호수와 산 사이에 집을 지으니 물가와 묏부리의 아름다움이 양편으로 둘러 얼비친다.
대나무와 꽃과 바위도 무리지어 쌓여 누각과 울타리에 둘리어 있다.
맑고 좋은 날씨를 골라 방을 닫는다.
무릇 들창이니 창문이니 바깥의 빛을 받아들일만한 것은 모두 틀어막는다.
방 가운데를 칠흑같이 해 놓고, 다만 구멍 하나만 남겨둔다.
돋보기 하나를 가져다가 구멍에 맞춰 놓고, 눈처럼 흰 종이판을 가져다가
돋보기에서 몇 자 거리를 두어 비치는 빛을 받는다.
그러면 물가와 묏부리의 아름다움과 대나무나 꽃과 바위의 무더기,
누각과 울타리의 둘러친 모습이 모두 종이판 위로 내리 비친다.
짙은 청색과 옅은 초록빛이 그 빛깔 그대로요, 성근 가지와 촘촘한 잎이 그 형상 그대로다.
구성이 조밀하고 위치가 가지런해서 절로 한 폭의 그림을 이룬다.
세세하기가 실낱이나 터럭 같아 마침내 중국의 유명한 화가 고개지(顧愷之)나
육탐미(陸探微)라도 능히 할 수 있는 바가 아니다.
대개 천하의 기이한 경관이다.
안타까운 것은 바람맞은 가지가 살아 움직이므로 묘사해내기가 지극히 어렵다는 점이다.
사물의 형상도 거꾸로 비쳐 있어 감상하면 황홀하다.
이제 어떤 사람이 초상화를 그리되 터럭 하나도 차이 없기를 구한다면
이 방법을 버리고서는 달리 좋은 방법이 없을 것이다.
비록 그러나 마당 가운데서 진흙으로 빚은 사람처럼 꼼짝도 않고 단정히 앉아 있는 것은
그 묘사하기 어려움이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와 다르지 않다.


놀랍게도 정약용의 이 글은 현대 사진술의 원리를 정확히 설명하고 있다.
창 밖의 아름다운 경치, 꼭 그리고 싶은 얼굴을 한치의 오차도 없이
종이 위에 사진 찍듯이 옮길 수가 있다고 적고 있다.
암실(暗室)을 만들어 작은 구멍을 통과한 빛의 무리가 돋보기를 통과하면서 확산되어
바깥의 풍경을 종이 위로 옮겨 놓는 신기한 마술을 설명하고 있다.

이번에는 국화꽃으로 그림자 놀이를 하며 벗들간에
즐겁게 노니는 광경을 묘사한 〈국영시서(菊影詩序)>를 함께 읽어 보자.

국화는 여러 꽃 가운데 특히 빼어난 점이 네 가지 있다.
늦게야 꽃을 피우는 것이 한가지이고, 오래도록 견디는 것이 한가지이며,
향기로운 것이 한가지이고, 어여쁘지만 요염하지 않고 깨끗하지만 차갑지 않은 것이 한가지이다.
세상에서 국화를 사랑한다고 하면서 스스로 국화의 운치를 안다고 하는 사람들도
이 네 가지의 범위를 벗어나지는 않는다.
나는 이 네 가지 외에 또 다만 등불 앞의 그림자를 꼽는다.
매일 밤 이를 위해 방의 벽면을 치우고 등잔 받침과 등잔을 차려 놓고 가만히 그 가운데 앉아서 혼자 즐기곤 했다.
하루는 남고(南皐) 윤이서(尹彛敍)에게 들렀다가 이렇게 말했다.
“오늘 저녁 자네가 우리 집에 자면서 나와 함께 국화를 보는 것이 어떻겠나?”
윤이서는,
“국화가 비록 아름답다고는 하나 어찌 밤중에 볼 수가 있겠는가?”
라고 하며 아프다고 사양하였다. 내가,
“어쨌든 가보기나 하세.”
하며 억지로 청하여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저녁이 되었다.
짐짓 동자를 시켜 등잔을 잡고 꽃 한 송이에 바싹 갖다 대게 하고는 윤이서를 당겨서 이를 보게 하며 말했다.
“기이하지 않은가?”
윤이서가 한참을 살펴보더니 말했다.
“자네의 말이 더 이상하군. 나는 아무리 봐도 기이한 걸 모르겠는걸.”
내가 말했다.
“자네 말이 옳아.”
조금 있다가 동자를 시켜 법대로 하게 하였다.
이번에는 옷걸이와 책상 등 여러 가지 방안에 있던 산만한 물건들을 치우고,
국화의 위치를 정돈하여 벽에서 약간 떨어지게 하였다.
그리고 등잔도 꼭 알맞은 위치에 놓아두고서 불을 밝혔다.
그러자 기이한 무늬와 희한한 형상이 갑자기 벽에 가득 차 오는 것이었다.
가까운 것은 꽃과 잎이 엇갈려 있고 가지와 줄기가 또렷하고
가지런한 것이 마치 수묵화를 그려놓은 것만 같았다.
그 다음 조금 떨어진 것은 너울대고 어른대는 그림자가 춤추듯 하늘거리는 것이 마치
동산에 달이 떠올라 뜨락의 나뭇가지가 서쪽 담장에 일렁이는 듯하였다.
먼 것은 흐릿하고 모호해서 마치 구름 노을이 엷게 깔린 것만 같고, 사라질 듯 여울지는 것은
파도가 넘쳐흐르는 듯해서, 황홀하고도 비슷한 것을 이루 형언할 수가 없었다.
이에 윤이서가 즐거워 크게 소리 지르며 뛸 듯이 기뻐하다가 손으로 무릎을 치면서 감탄하며 말했다.
“기이하고 기이하다! 천하의 뛰어난 광경일세 그려.”
한참을 그러다 흥분이 가라앉자 술을 내오게 하였다.
술이 거나해지자 서로 시를 지으면서 즐겼다.
이때 주신(舟臣) 이유수(李儒修), 혜보(徯父) 한치응(韓致応), 무구(无咎) 윤지눌(尹持訥) 등도 또한 같이 모였다.


정약용의 국화꽃 그림자놀이 글을 읽다보면 소소한 일에도 순서가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처음부터 바로 제대로 된 그림자를 보여주었더라면 감동은 이렇게 크지 않았을 것이다.
술부터 내와서 자리가 소란스러웠어도 안 될 말이다.
처음에 짐짓 허튼 수를 한 번 두어 상대의 김을 뺀 뒤, 아예 기대를 하지 않게 해놓고서
느닷없이 정면 공격으로 일격에 무찔러버리는 재치도 배울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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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노을
오늘 정민교수가 집필한 "미쳐야 미친다"(不狂不及)라는 책을 읽다가
"이덕무와 정약용의 그림자 놀이"라는 부분에서 무척 재미있는 구절이 있어서 여기에 옮겨 보았습니다.
수원화성을 축조하고 거중기를 발명한 발명가이자 실학을 집대성한 학자로 잘 알려진
다신 정약용(1762-1836)이 그림자 놀이를 하면서 초기 사진기술의 원리인
카메라 옵스쿠라(Camera Obscura)를 이렇게 글로 남겨 놓았다는 사실이 재미있고 새롭기만 하였습니다.

카메라 옵스쿠라(Camera Obscura)에 대한 글은
밑에 있는 사진의 역사와 기원에서 자세히 적어놓았습니다.
2012-12-21
15:11:49
작은새/황영지
아~~감탄이 절로 나옵니다..^ ^*
간혹 서양 사진책을 읽으면서...왜 우리 조상중에 이런 관찰을 한 사람이 없지...했는데
저의 무지가 뒤집혀버렸네요...ㅎㅎ

창호지를 통해서 들어오는 그림자놀이를 곰곰 상상해보고..
직접 문을 통해 들어오는 빛을 이용해 사진 촬영을 해본 기억에...왠지 흐뭇해집니다.ㅎㅎ
좋은 글..감사합니다.
정민교수의 불광불급...꼭 읽어보고 싶습니다.ㅎㅎ
2012-12-21
15: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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